[한겨레칼럼] 신자유주의자들의 '굴욕' - 세계를 속인 거짓말, 미국 월가 파산의 교훈
분류없음 2008/09/22 15:44 |그동안 세상이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일까?
얼마 전까지 ‘정부의 규제는 경제발전을 막는 악’이라고 떠들어대던 이들이 이제는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세상이 망한다고 난리다. 세계화만이 살길이니 전세계가 금융과 무역 장벽을 허물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며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던 미국 정부가 이젠 7000억달러(약 795조원)의 세금을 퍼부어 금융회사 구하기에 나선다. 미국 정부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에이아이지(AIG)에 쏟아부은 국민 세금이 이미 2850억달러(약 323조원)이다.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901조원을 훨씬 뛰어넘는 돈이 거짓말의 대가를 치르는 데 쓰이게 됐다.
혼란스럽다.
추석 연휴에서 돌아온 서민들은 난데없는 ‘월가 금융위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펀드에 넣어둔 내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택담보 대출 이자는 어떻게 될지, 은행 대출이 어려워진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허둥대야 했다.
이 엄청난 위기가 미국의 부동산 거품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한국 정부는 ‘더 많은 집을 짓고, 더 빨리 규제를 풀자’는 ‘대담한(?)’ 경제정책을 잇달아 발표한다.
얼마 전 중국 경제 위기론의 실체를 알아보겠다며 상하이 중심가의 한 객장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내 돈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어리둥절해하던 중국의 서민들을 여럿 만났다. 낡은 자전거를 객장 밖에 세워 놓고 삼삼오오 수군대던 낡은 옷차림의 이들은 도대체 왜 1년도 안 돼 중국 주가가 70% 폭락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600위안(약 1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1만위안(166만원)을 투자했다는 가정부 아주머니는 절반도 안 남은 투자금에 울상을 지었다.
지난주 한국에 온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연합회(IIF) 총재는 미국 재무부와 제이피모건에서 일한 금융계의 권위자다. 그는 제이피모건에서 일하던 시절 ‘큰손’ 고객이 거액의 파생상품 거래를 제안하러 왔을 때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2시간 동안 거래내역을 파악한 뒤 회장실로 결재를 받으러 갔다. 설명을 시작한 지 3분도 안 돼 내가 거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분명해졌다. 회장은 제대로 이해한 뒤에 다시 오라고 했고 24시간 뒤 겨우 다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금융 거래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금융 전문가들이 투자위험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이런 위험한 투자에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었다. 그동안에도 ‘규제 철폐’만이 정답이고, 국가의 역할은 후진적이라는 주장만 떠들썩했다.
세계화가 맞긴 맞는 것 같다. 한국 정부도, 회사원도, 중국의 서민들도, 월가의 전문가도 거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끝과 끝에서 이토록 복잡하고 끈끈하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얽혀 있었다. 서민들은 나만 안 하면 미래가 더 팍팍해질 것 같아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전문가들이 운용한다는 펀드에 맡겼다. 그런데 1년에 수백억원을 받는 월가의 최고 전문가들이 이제 와서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지러운 일주일을 보낸 뒤,우리는 시장의 방해물로 손가락질당하던 국가의 ‘화려한 귀환’을 씁쓸하게 목격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슬프지만, 좀더 눈을 크게 뜨고 뉴스를 깊이 따져봐야 할 세상이 왔다. 우리 삶을 더는 거짓말에 내맡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장정수 칼럼] 미국 월가 파산의 교훈 / 장정수 편집인
미국 월가의 몰락으로 1989년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권 붕괴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도 종말을 맞게 됐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였던 신자유주의는 시장은 선이고 정부 개입은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정부의 규제를 철저히 부정해 왔다. 하지만 그 신자유주의의 아이콘이었던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악으로 규정했던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참담한 처지에 몰렸다. 미국의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어온 부시 정권이 사회주의 정권을 방불케 할 만큼 가장 반신자유주의적이고 반시장적인 국가 개입 정책을 선택한 것은 역사적 희극이다.
1917년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체제가 탄생한 이후 몰락하는 데 70여년이 걸렸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파산하는 데는 2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역사의 진행속도가 그만큼 빨라진 것이다. 미국이 주도해온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으로 전세계가 그물망처럼 얽혀서 하나의 경제권으로 편입된 데 따른 것이리라. 한 시대의 종언은 필연적으로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이데올로기의 추락도 동반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찬양하고 전세계에 확산시켰던 시장만능주의는 월가의 추락과 함께 역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구체적 윤곽은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싸여 있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정부 개입의 이데올로기가 혼재하는 혼돈과 불안,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부시 행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방침에 따라 한 고비를 넘겼지만 침체일로에 있던 미국 경제의 흐름이 반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 경제는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경제의 견인차였던 금융분야마저 붕괴함에 따라 상당 기간 침체의 늪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의 소비시장 구실을 해온 미국 경제의 위축은 세계경제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와 함께 경제성장에 집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하의 한국 경제는 큰 시련을 겪게 될 것 같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 금융자본주의를 모델로 삼고 경제구조 개혁을 추진해온 한국은 이런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 유사한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의 주요 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과 대처 방식은 한국이 과연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우려하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는 파산한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들을 모델로 설정한 자본시장통합법을 경제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강행할 태세이다. 또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가 수십만 채나 누적된 상황에서 향후 10년간 매년 50만 채의 아파트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건설회사의 금고를 채워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제활력의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독일과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월가 위기를 가져온 투자은행이 아닌 상업은행 중심의 금융구조가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어 그 타격을 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이 지향하는 경제모델이 이미 파산한 미국의 금융자본주의가 아니라 독일과 일본의 내실 있는 경제체제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 관련기사 <시사iN> 월가의 침몰 미국식 자본주의 수장되는가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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